[기고문] 수중도시 Underwater city

 수중도시

기술의 발전과 인간의 수용성, 어느것이 선행할까. 기술이 앞서고 인간이 뒤따르는 현상이 점점 일반화 되고 있다. 단순 유토피아로 그려지는 다양한 미래세계의 모습들이 실제로 구현되어 그 속에서 인간관계가 맺어질 때, 이전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던 충돌이 발생한다.

9월 22일


“쩝쩝이요.”


“네? 쩝쩝이요? 그게 뭡니까?”

짜장면을 먹던 수사관이 물었다.


“그새끼 쳐먹는소리 말이에요! 자꾸 쩝쩝거리잖아요!!” 

태현이 벌컥 일어서며 역정을 냈다.


‘지금 이놈이 뭐라는거지? 밥먹는 소리가 시끄러워서 그 사단을 냈다고?’

수사관이 자세를 바로잡고 입가에 묻은 검은소스를 닦았다.

[당황한 모습으로 검은소스를 닦아내는 모습의 일러스트]

“태현씨, 장난치지 말고 얼른 말해요. 광역수사대 넘어가면 지금처럼 편하게 해줄것 같아요? 솔직히 말해봐요. 누가 얼마나 준다던가요?”


“고수…”


“옳지! 그래요. 윗선이 있었군요.”


“나는 고수가 싫은데, 자꾸 고수를 더 달라고 난리치고! 나는 새우 볶음밥이 좋은데, 팟타이 먹으라고 그놈이 내것도 시키잖아요. 그러더니 내 팟타이에 왜 고수를 더 넣어달라고 지랄이야! 씨발새끼! 어찌나 후루룩 쩝쩝 먹는지. 아 글쎄 옆으로 침튀기는게 다 보일 지경이라니까요! 국물은 또 몇번이나 리필을 하는지 몰라. 아주 그냥 육수를 냄비째로 가져다 두고 먹지!”


“하아. 아니, 잠깐만요. 그러니까, 지금, 현우씨가 태현씨 팟타이에 고수를 넣어서 시켰는데 국물도 리필해 먹고 그래서 벽에 구멍을 뚫었다구요? 여기 수중도시 벽에??”


“네!! 하! 참! 어이가 없어서! 그 미친놈은 지꺼나 잘 먹으면 되지, 아니, 지꺼도 엉망으로 먹으면서 내껀 왜 건드리고 그래서 내 성질을 건드려!”


지난 9월 21일, 수중도시 안전관리팀장 현우씨가 숙소에서 수장된 채 발견되었다. 출세가도를 달리던 행정가인 그에게 안전관리팀장은 그저 잠시 쉬어가는 휴양지에 불과했다. 안전관리팀장 숙소가 1급 인사를 제외하고 수중조망이 가능한 유일한 숙소였기에 그 자리는 인기가 꽤 높았다. 그런데, 부하직원이었던 태현씨가 현우씨 숙소 외벽에 구멍을 내버린 것이다.

밀폐된 공간에서 한정된 사람끼리 지속되는 관계는 서로를 향한 과도한 관심으로 이어질 수 있다. 관심과 참견은 같은행위의 다른말이다. 평소에는 눈에 띄지 않던 작은 행위도 밀폐된 공간에서는 크게 다가온다.


9월 21일


“여보, 임플란트 부러진건 괜찮아요?”


“응, 괜찮아, 밥먹을때 음식이 좀 새긴 하는데 그냥 살만 해. 지금 여기 치과의사가 두달동안 휴가래. 얼른 여기 일 마무리 짓고 나가면 다시 해 넣어야지.”


“그러게 거긴 왜 갔어요. 화곡동 관제실처럼 편한 자리가 어디 있다고…”


“아냐, 관제실은 매일 똑같아서 실적이 없어. 여기 오니까 좋네, 방에 전망도 좋고.”


“그 방이 그렇게 인기라면서요?”


“그러게, 나는 이런덴줄 몰랐어. 그냥 원룸 하나 주는 줄 알았더니 말이야. 어떨땐 내 방앞으로 가마우지가 들어와서 물고기를 잡아 채 가더라고! 가마우지가 그렇게 깊이까지 잠수하는 새라는걸 처음 알았지 뭐야!”

[수중도시 앞으로 가마우지가 깊이 잠수하는 일러스트]


“사람들은 좀 괜찮아요?”


“응, 여기 사람들이 다들 도전정신도 있고 착해. 특히 현우라고 매일 같이 일하는 친구하나 있는데, 일을 아주 잘해. 기특해서 내가 밥도 매번 사주거든. 요즘 사람 답지 않게 고수도 잘 먹더라고! 나랑 잘 어울리는 것 같아.”


“다행이네요. 그래도 당신만 너무 가깝게 해주지 말아요. 지난번에도 신경쓰더니 갑질이니 뭐니 하면서 고생한거 기억안나요?”


“에에, 괜찮아. 그땐 좀 이상한 사람인데 내가 못알아봐서 그렇지~”


“알았어요. 춥지는 않아요?”


“응, 여기가 물속이라 처음엔 걱정했는데, 사람들 말 들어보면 물속이라 기온변화가 적다고 그러네. 지내기에 좋은 환경 같아. 우리도 나중에 여기로 이사올까?”


“놉! 저는 그래도 하늘에 뜬 진짜 태양 보고 살래요.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고 얼른 마무리짓고 나오기나 해요. 소진이가 아주 목을 빼고 기다리고 있어요. 이제 말문이 트여서 어찌나 조잘대는지.”


“하하, 알았어! 다음주엔 하루 시간내서 잠깐 나가볼게.”


“그래요.”


대화는 언어만으로는 부족하다. 언어의 빈자리는 상황과 표정으로 채워진다. 나에게 너와 너에게 나는 같아보이지만 우리는 한없이 다르다. 사회적 관계를 위한 대화는 불편함의 골짜기 거리가 유지되어야 한다. 긴밀한 관계를 위한 대화는 불편함의 골짜기를 넘어선 이후에 투명해진다. 한정된 공간에서 서로의 허락없이 거리가 가까워지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매우 위험한 일이다.


9월 20일


“자네, 팟타이 좋아하는 것 같던데 오늘 점심은 팟타이 시켜 먹을까?”

사무실의 적막함을 깨고 현우가 태현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같이 일한지 한달이 다 되어 가지만 아직도 뭔가 불편하다. 분명히 서로 말을 주고 받는데, 대화의 맥이 잡히지 않는다.


“팀장님! 이젠 제 식성까지 뚫고 계시네요? 좋습니다!!”

태현이 웃으며 답했다. 싫어하지 않는것 같다. 다행이다.


“알겠네, 자네 요 앞에 먹어본 거기 괜찮았지? 내가 가서 픽업해 올 테니까 서류작업 마무리 하고 있게.”

할일이 많아 보이는 태현을 배려하기 위해 현우가 직접 가서 음식을 가져오려 한다. 지난번에 먹을때 고수를 넣는 것 같던데, 이번에는 특별히 많이 달라고 할 참이다. 


현우는 고수를 싫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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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30일 노윤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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